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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평생학습 : 기술과 함께, 그리고 기술을 넘어 > 오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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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Vol.23

오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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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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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시외버스 터미널에 간 적이 있다. 자식들 보러 다녀가시는 부모님 배웅을 하기 위해서였다. 터미널이 공사 중인 터라 임시 매표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표 파는 사람은 없고 키오스크만 4~5대 설치되어 있었다. 좋은 기회다 싶어서 어머니께 표 끊는 법을 알려드렸다. “어머니, 스마트폰이랑 똑같아요. 화면 보고 터치만 잘하시면 돼요. 자 너무 겁먹지 마시고 한번 해보세요”. 옆에 든든한 아들이 있기도 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어머니는 “뭐 배우면 할 수 있지”라고 기분 좋은 목소리로 더듬더듬 키오스크 화면을 누르신다. 몇 번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표를 끊는 데 성공. “다음부터는 자신 있게 해보세요”라는 말씀을 드리며 바라본 어머니의 얼굴은 뿌듯한 미소로 환하다. 


 그날 터미널에는 해피엔딩 풍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차를 기다리느라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키오스크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는 신용카드를 들고, 화면을 봤다가, 주위를 둘러 보았다가, 시계를 보았다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표를 키오스크에서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큰 당혹감을 느끼는 듯했다. 도와드려야겠다고 일어나려는 순간,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한 중년 여성이 “도와드려요?”라며 키오스크로 먼저 달려간다. 다행히도 차 시간 전에 매표에 성공한다. 보고 있는 나마저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이다.

디지털 기기 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풍경은 자주 목격된다. 누군가는 능숙하게 디지털 기기의 관문을 통과하지만, 누군가는 당황하고 주저하고 망설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그렇다. 20대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데 익숙한 편이다. 새로운 기기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키오스크나 스마트폰 앱 앞에서 당황할 때가 있다. 순간 ‘나도 뒤처지고 있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 변화 속도 때문이다. 인간이 그 속도에 따라가기 벅찰 지경이다. 어디서든 책을 읽는 풍경보다 스마트폰을 보는 풍경이 흔하다.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휴게소에서도, 버스정류장에서도, 키오스크 앞에 줄 서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런 풍경은 기술 발전이 불러올 일상 변화의 서막에 불과하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기술 등이 바꿀 혁신적인 일상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대화형 인공지능인 챗지피티(Chat GPT)가 화제가 되고 있다. 챗지피티는 정보를 찾아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낸다. 마치 ‘사람’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제 궁금한 게 있으면 검색 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과 대화하면 된다. 가상현실 기술은 어떤가? 미국의 애플에서는 최근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을 결합한 혼합현실(MR: mixed reality) 기기인 비전 프로(Vision Pro)라는 상품을 개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기존의 가상현실 기기를 넘어서 우리 일상과 사무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기기라고 한다. 비전 프로가 성공한다면,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가 사라지고, 거실의 TV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디서든 MR기기를 쓰고 일하고, 놀고, 대화하는 일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는 누구나 처음 겪는 것들이기에 예외 없이 모두에게 새롭고 낯설다. 적응하는 순간 세상은 저만치 달아난다. 자신 있게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사람도, 언젠가는 낯선 기계 앞에서 주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새로운 기술과 ‘함께’하기 위한 힘을 키워야 한다. 끊임없이 발전하며 우리 일상을 바꾸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힘 말이다. 디지털 문해(Digital Literacy)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 문제이다. 디지털 문해는 평생교육에 기본이 되는 문해의 확장 개념이다. 디지털 문해는 다음과 같은 능력으로 구성된다. 첫째, 디지털 매체 활용 능력이다.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 등 디지털 기기의 속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필요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둘째, 정보 탐색 능력이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삶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탐색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필요한 적절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셋째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생산 능력이다. 우리는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생산한다. 컴퓨터로 문서를 만들고 이메일을 보낸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편집한다. 코딩을 할 줄 안다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앱을 만들 수 있다. 넷째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우리는 다양한 디지털 채널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친구, 가족, 이웃과 소통한다. 여기에는 탐색 능력, 활용 능력, 생산 능력 등이 모두 필요하다. 보다 적극적인 디지털 문해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비판적 사고 능력이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정보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가짜 뉴스들도 넘쳐난다. 따라서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접하는 정보를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 능력도 중요하다. 이외에도 디지털 매체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예: 디지털 범죄 예방 등), 디지털 공간에서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규범을 지킬 수 있는 능력 등도 필요할 것이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에서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명목으로, 다양한 디지털 활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디지털 활용 능력뿐만 아니라, 디지털 정보를 적절히 탐색하고, 생산하고, 소통하고, 평가하는 등의 다양한 내용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또한, 디지털 ‘적응’의 문제는 전 생애적인 과업이기에 평생학습 차원에서 모두를 위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과 함께 우리는 기술을 ‘넘어선’ 평생학습을 상상할 필요도 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는 『기술에 대한 물음, Die Frage nach der Technik』에서 현대사회 기술을 비판적으로 사유한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현대 기술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기술은 효율적이고 유용하다는 명분으로 인간을 ‘몰아세우고’(Ge-Stell) 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거리도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작동해야 하는 기술에 인간이 오히려 종속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고, 더 빨리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디지털 기술 발전 속에서 인간의 삶은 행복해졌을까? 더 바빠지고, 더 고독해지고, 더 공허해진 것은 아닐까? 우리의 필요를 넘어 더 비싸고, 더 성능 좋고, 더 최신의 디지털 상품을 사려고 안달 내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에 기술의 속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속도에 우리의 일상을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해야 하는 기술에 우리의 삶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디지털 기술을 발전은 끊임없이 인간을 무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기술 문명이 가져다준 물질과 정보의 풍요로움 이면에 또 다른 소외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문해 학습자를 대상으로 정보 역량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정보 기기 조작이 불가능한 수준’에 해당하는 문해 학습자가 16%나 되었다. ‘일상생활의 문제 상황 해결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 능력을 갖춘’ 문해 학습자는 25%에 불과했다(길혜지 외, 2019).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비문해, 저문해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인 소외가 가중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이다. 1) 이런 질문과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면, 막연하게 새로운 기술을 좇기보다는 디지털 기술을 주체적으로 활용하고 기술이 가져다주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인간을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풍요롭게 하는, 인간을 고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인간과 자연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돕는 기술 활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접근의 평생학습은 기술 자체보다는 인간 삶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기술을 ‘넘어선’ 평생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버스터미널에서 필자의 어머니, 그리고 60대 여성을 떠올려 본다. 작은 버스정류장에서 펼쳐진 장면은 디지털 시대의 ‘벽’ 앞에서 주저하고 당황하고 좌절하는 모습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풍경은 절망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필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도움으로 두려움을 넘어서 키오스크에 적응할 결심을 하였다. 키오스크 앞에서 망설이던 60대 여성은 이름 모를 시민과의 소통에 성공하였다. 디지털 ‘벽’ 앞에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교육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늘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의 공동체와 연대가 존재한다. 그래서 필자는 바람을 가져본다. 모든 사람들에게 디지털 기술에 적응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기를,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기술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희망과 연대를 꿈꿀 수 있기를.




1) 실제로 문해 학습자를 대상으로 정보 역량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정보 기기 조작이 불가능한 수준에 해당하는 문해 학습자가 16%나 되었다. ‘일상생활의 문제 상황 해결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 능력을 갖춘문해 학습자는 25%에 불과했다(길혜지 외, 2019).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비문해, 저문해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인 소외가 가중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이다.